유시민 작가와 일부 친민주당 성향 미디어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유 작가와 특정 정치 미디어 진영이 타인을 하나의 정치적 묶음으로 분류할 때는 이를 분석과 비판으로 포장하면서, 자신들이 같은 방식으로 묶여 비판받을 경우에는 멸칭과 공격으로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문조털래유’라는 표현에 대한 반발을 언급하며, 그동안 자신들이 타인을 ‘ABC’, ‘뉴 이재명’ 등으로 묶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왔던 태도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남에게 붙인 이름표는 정치 분석이고, 자신들에게 붙은 이름표는 모욕이라는 식의 태도야말로 대중이 피로감을 느끼는 지점이라는 주장이다.
‘촉법’과 ‘용역’은 되고 ‘문조털래유’는 안 된다는 논리
비판의 핵심은 정치적 언어의 이중잣대다. 영상은 과거 특정 인물을 두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촉법 평론가’라고 부르거나, 다른 평론가를 향해 ‘철거 전문 용역 평론가’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했던 사례를 소환했다.
발언자는 이 같은 표현들이 상대를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조롱과 낙인의 대상으로 만드는 언어였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이를 풍자나 비판으로 받아들이다가, 자신들을 향한 ‘문조털래유’라는 표현에는 멸칭이라고 반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조금박해’라는 표현도 다시 거론됐다. 특정 정치인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분류해 낙인찍고 공격했던 방식이 과거에도 반복됐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표현 싸움이 아니라 정치권과 정치 미디어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프레임 정치’의 부메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유시민 대 유시민’의 충돌
이번 국면을 “유시민이 유시민과 싸우고 있는 상황”으로 정리했다. 과거의 유시민이 사용하거나 용인했던 정치적 프레임, 낙인, 조롱의 방식이 현재의 유시민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표현 하나의 적절성만이 아니다. 정치적 논쟁에서 상대를 묶고, 이름 붙이고, 조롱하는 방식이 언제는 전략이고 언제는 폭력인지에 대한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언어의 칼을 휘두르고, 불리할 때는 언어의 상처를 호소한다면 대중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은 특정 표현의 호불호를 넘어, 정치 평론과 정치 미디어가 스스로 쌓아온 공격적 언어 문화가 되돌아온 장면으로 읽힌다. 프레임을 만든 이들이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정치 언어의 무대는 날카로운 거울방이 된다. 이번 논란이 잠잠해 지는 것 불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