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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창시자는 누구인가- 인천 공화춘의 ‘숨은 설계자’를 둘러싼 역사 추적

-‘우희광 신화’ 흔드는 주식 증서… 창시자 논쟁 재점화

-곽춘방·왕심보 등장… 공화춘은 개인이 아닌 합자 경영체였나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개항기 화교 자본과 성장 서사

유향연 | 기사입력 2026/04/27 [08:32]

짜장면 창시자는 누구인가- 인천 공화춘의 ‘숨은 설계자’를 둘러싼 역사 추적

-‘우희광 신화’ 흔드는 주식 증서… 창시자 논쟁 재점화

-곽춘방·왕심보 등장… 공화춘은 개인이 아닌 합자 경영체였나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개항기 화교 자본과 성장 서사

유향연 | 입력 : 2026/04/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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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차이나타운 등 인천의 대표 관광 자원 모습.    

 

[내외신문/유향연 기자] 인천 차이나타운 골목을 걷다 보면, 볶아지는 춘장의 향이 시간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진다.

 

그 향의 시작점으로 늘 지목되어 온 이름, 공화춘.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 온 우희광.

 

그러나 최근, 이 익숙한 서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의 초점이 다시 맞춰지듯, 공화춘의 창시자를 둘러싼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인천 중구에 자리한 짜장면박물관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단순한 음식 전시관이 아니라, 개항기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이주민의 삶이 교차한 공간이다.

 

안내판은 비교적 명확한 서사를 제공한다. 산둥성 출신 화교 우희광이 1911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듬해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며 ‘공화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이 설명은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박물관 2층에 전시된 한 장의 문서가 이 정설에 미묘한 균열을 낸다.

 

1914년에 발행된 공화춘 주식 매매 증서다. 이 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우희광이 아니다. ‘총리인’이라는 직함 아래 기록된 인물은 곽춘방. 당시 총리인은 오늘날의 대표자, 즉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실질적 운영 책임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공화춘의 초기 중심 인물은 우희광이 아니라 곽춘방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또 다른 단서가 등장한다. 1922년의 주식 매매 증서에는 비로소 우희광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직함은 총리인이 아니라 ‘경리인’, 즉 관리 책임자 수준에 해당하는 지배인이다. 같은 문서에서 총리인은 왕심보라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구조를 보면 공화춘은 단일 창업자가 아니라 여러 투자자가 참여한 합자 형태의 사업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존재한다.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는 공화춘을 다수의 주주로 구성된 회사로 분석하며, 당시 경영 구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왕심보가 사장, 필명향이 부사장, 그리고 우희광이 지배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구도 속에서 우희광은 창시자라기보다는 현장 운영을 담당하며 점차 영향력을 키운 인물로 읽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서사의 흐름이 한 편의 성장 서사처럼 펼쳐진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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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차이나타운에 들어선 짜장면박물관     내외신문

 

초기에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던 인물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점차 지분을 확보하며, 마침내 공화춘 건물의 소유주로 자리 잡는다.

 

마치 주방의 불 앞에서 시작해 가게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처럼, 우희광의 행보는 단순한 창업자 프레임으로는 담기 어려운 입체성을 지닌다.

 

이러한 해석은 가족의 증언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우희광의 증손자는 공화춘이 처음부터 여러 투자자가 참여한 구조였으며, 증조부는 현장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한다. 초기 문서에 이름이 없는 이유 역시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인천 화교사회 역시 이 문제를 단순한 인물 논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개항기 이주민 경제와 공동체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인식하고 있다.

 

화교협회 관계자는 우희광이 단순한 관리자에서 출발해 공화춘을 끝까지 지켜낸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의 공로를 다른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남아 있는 사료들을 기반으로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이 논쟁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짜장면의 시작을 누구의 이름으로 기억할 것인가. 최초로 불을 지핀 사람인가, 아니면 그 불을 꺼지지 않게 지켜낸 사람인가. 혹은 그 둘 모두를 포함한 집단의 이야기로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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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차이나타운 자장면 박물관    

 

짜장면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이주와 적응, 자본과 노동, 그리고 시간의 층위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공화춘의 창시자를 둘러싼 논쟁은 그 깊이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다. 접시 위에 올려진 검은 소스처럼, 역사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인천의 골목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가장 진짜 역사에 가까운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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