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대청에서 흑산도로… 분단이 바꾼 ‘참홍어 지도’-“이제는 미래로”… 낙후된 인천 어업 환경 혁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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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킹푸드 채널에 공개된 대청도 홍어 홍보영상의 한 장면. 대청도 청정 해역에서 지역 어민이 홍어를 어획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성화 |
[내외신문/유향연 기자]인천 바다는 단순한 어장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흐르는 거대한 이동의 통로였다.
정연학 회장의 신간 ‘인천 물고기 로드’는 이 바다 위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경로, 즉 물고기의 이동과 함께 이어진 인간의 생존 전략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특히 우리가 ‘흑산도 홍어’로 알고 있는 대표적 수산물의 뿌리가 사실은 인천 백령도와 대청도라는 점을 밝히며, 기존의 인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문제의식은 ‘어디서 잡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동했느냐’에 있다. 참홍어는 회유성 어종이지만, 그보다 더 역동적으로 이동한 것은 어민들이었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장벽은 단순히 국경을 나눈 것이 아니라, 어업의 지도 자체를 바꿔 놓았다. 1960년 북방어로저지선 설정 이후 서해 5도 어민들은 더 이상 북쪽 어장으로 나갈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청도 어민들이 흑산도로 이동하며 전파한 ‘건주낙’ 기술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기존의 장주낙보다 효율성과 품질 면에서 우수했고, 흑산도를 새로운 참홍어 중심지로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됐다.
즉, 오늘날 흑산도의 명성은 자연 발생적 결과가 아니라, 인천 어민들의 기술과 이동이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다.
![]() ▲ 신간 인천물고기로드 (네이버 화면 캡쳐) |
정연학 회장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어업 기술의 전파로 보지 않는다. 그는 “물고기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삶과 문화, 신앙과 소리까지 함께 이동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천 연안에서 시작된 어업 문화는 남하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됐다. 젓새우 어업 역시 인천과 강화에서 출발해 전남 진도와 신안까지 확산됐고, 이는 지역 간 문화 교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이동이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민속과 신앙의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연평도 조기 어장에서 형성된 ‘임경업 장군 신앙’은 서해를 따라 경기, 충청, 전북, 심지어 북한 황해도까지 퍼져나갔다.
또한 황해도 지역의 ‘서도 소리’가 남쪽까지 전파된 중심 거점 역시 조기 파시였다. 바다는 물고기뿐 아니라 이야기와 믿음, 소리를 실어 나르는 통로였던 셈이다.
책은 이러한 흐름을 다양한 층위에서 분석한다. 인천 어업 환경과 물고기의 생태, 회유성 어류의 경로, 기수역 생태계, 조기와 민어의 역사, 수산물 유통 구조, 어업 문화의 확산 과정, 그리고 미래 전략까지 총체적으로 다룬다. 단순한 수산학적 접근을 넘어 인문학, 민속학, 경제학이 결합된 복합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책은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인천 어업이 처한 구조적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거 조기 파시로 전국 최대 어장을 자랑했던 인천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낙후된 어업 환경과 생산성 저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연학 회장은 해법으로 ‘스마트 어장 관리’, ‘자원 회복을 위한 방류 사업’, ‘지속 가능한 어업 시스템’을 제시한다.
![]() ▲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인천항은 식민지 경제의 핵심 통로가 되었다. 개항기부터 성장해 온 항만은 이제 본격적인 수탈의 관문으로 기능했다.인천항은 조선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과 농산물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주요 출항지였다. (자료화면/인천시 제공) |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어업을 산업 구조로 재편하는 접근이다. 과거처럼 자연 조건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과학 기반의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천 어업은 쇠퇴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백령도와 대청도에서 시작된 홍어의 길은 흑산도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길을 다시 설계할 주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다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여전히,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겹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