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성장펀드 3개월, 지역과 중소기업은 여전히 기다리는 중-구조개편이 필요하다.중앙 통제형 구조 속에 갇힌 ‘국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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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국민성장펀드가 출범할 때 기대는 분명했다.
이름에 ‘국민’이 들어간 만큼, 수도권 대기업이 아닌 지역과 중소기업에도 자금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현장의 체감은 정반대다.
AI와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전략 산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외다. 특히 중소기업, 콘텐츠, 지역 기반 산업에서는 “승인 사례가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정책의 간판은 ‘성장’인데, 체감은 ‘정지’에 가깝다.
핵심은 구조다.
국민성장펀드는 산업은행이 기획하지만, 최종 승인 권한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다. 설계는 현장에서 하고, 결재는 중앙에서 한다. 이 구조는 대규모 전략 산업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다품종·소규모 투자가 필요한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에는 치명적이다.
지역 산업은 본질적으로 분산형이다.
전남의 농식품 가공 기업, 부산의 해양·관광 콘텐츠, 강원의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 광주의 문화·IP 기반 기업들. 이들은 대부분 수백억 원 미만의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인다. 담보가 약하고, 유형 자산보다 아이디어와 네트워크가 경쟁력이다.
하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이런 투자조차 중앙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사 인력도 충분하지 않고, 산업 특성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 트랙도 부족하다. 결국 보수적 판단이 반복된다.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보류된다.
그 사이 지역은 또 기다린다.
지역 산업 전략은 요원해지고 있다. 정부는 균형발전을 말하지만, 자금 흐름은 여전히 중앙 집중형이다. 정책금융이 지역 전략 산업의 마중물이 되기보다, 중앙 전략 산업의 보조 엔진에 머무는 모습이다.
중소기업 지원의 틀 역시 과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증, 대출, 일부 지분 투자. 그러나 오늘날 지역 산업은 IP·플랫폼·문화·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 제조업 중심 심사 틀로는 평가 자체가 어렵다.
결국 구조적 병목은 ‘통제 중심’ 시스템이다.
모든 승인권을 중앙이 쥐는 방식은 책임을 분산시키는 대신 결정을 지연시킨다. 특히 소규모 투자까지 일일이 중앙에서 판단하는 구조는 정책금융의 기동성을 떨어뜨린다.
해법은 단순하다.
수백억 원 단위 이하의 투자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에 전결권을 부여하고, 기획재정부는 사후 보고와 성과 평가에 집중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사전 전면 통제가 아니라, 사후 책임 관리 체계로 무게를 옮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행은 산업 특성에 맞춘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지역 산업 특화 트랙을 별도로 구성하고, 콘텐츠·IP·디지털 분야 전문 인력을 강화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지금처럼 AI와 신재생만 집행이 이뤄지고, 지역과 중소기업이 대기 상태에 머문다면 국민성장펀드는 ‘전략 산업 펀드’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체력은 대기업 몇 곳이 아니라, 수만 개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 생태계에서 나온다.
지역 산업 전략은 발표문에만 존재해서는 의미가 없다. 자금이 흐르지 않으면 전략은 종이 위 설계도에 불과하다.
정책금융은 속도가 생명이다. 특히 지역 산업은 타이밍을 놓치면 기업이 사라진다. 인력이 빠져나가고, 프로젝트는 무산된다.
국민성장펀드는 아직 초기 단계다. 지금 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또 하나의 중앙 집중형 정책 자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성장의 방향은 중앙 몇 개 산업이 아니라 지역과 중소기업까지 닿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산 증액이 아니라 구조 개편이다.
지역 산업 전략이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되려면, 승인 권한의 분산과 책임 있는 전결 체계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성장은 현장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그 현장이 너무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