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의 유혹을 뿌리친 선택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시대의 방향을 읽고, 어디에 남을 것인가를 결정한 판단이었다.
2023년, 국내 코인 시장에서 ‘대부’로 불리던 한 코인 메이커를 영화제 현장에서 모 배우 공동시상자로 만났다.
서른을 갓 넘긴 그는 이미 강남에 빌딩을 보유하고 있었고, 수많은 코인 프로젝트를 기획해 상장시킨 인물이었다.
자신이 캐피탈 회사들이 기본 비용으로 수십억 원을 대고, 그는 아이디어를 백서로 정리해 시장에 던졌다. 그 세계에서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었고, 규제는 뒤늦게 정리하면 될 문제로 취급됐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코인 하나만 만들면 됩니다. 4개월이면 250억, 벚꽃 피기 전엔 300억도 가능합니다.”
당시 코인 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토큰, 책임 주체가 사라지는 발행 구조, 그리고 투기와 사기가 뒤섞인 생태계. 단기간 수익은 가능했지만, 지속 가능한 산업 모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코인 발행이 아니라, 창작자와 전달자,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WEB3.0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콘텐츠의 가치가 투기로 소모되는 구조가 아니라, 창작 과정과 유통, 수익 배분이 투명하게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창작자는 지속 가능해지고, 전달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문화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고 많은 분야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이후 선택한 길은 느리고 고된 과정이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디지털 자산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의 변화를 기다렸다. 부동산과 증권, 디지털 기술이 충돌하지 않고 결합할 수 있는 구조를 상상했고, 그 전제가 되는 법률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10년 이상 운영해온 B2B 플랫폼을 WEB3.0 기반으로 차근차근 재정비했다. 국제 인증을 준비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기술과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특히 자산 보관 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 디지털 자산이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뢰 가능한 커스터디, 다시 말해 디지털 자산 은행에 준하는 보관 체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국내 최대 규모의 커스터디 기관과 보관 구조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디지털자산법, 이른바 토큰증권법(STO)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단순한 법 하나의 제정이 아니다.
코인과 증권의 경계를 흐려왔던 시대에서 벗어나, 자산의 성격에 맞게 규율하는 체계가 마련됐다는 의미다. 부동산은 부동산답게, 증권은 증권답게, 디지털 기술은 그 유통과 관리의 도구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다.
이 변화는 많은 것을 잠재운다.
과거처럼 백서 하나로 자금을 모으고, 상장과 동시에 책임이 사라지는 구조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단기간에 수백억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이 통하던 시장은 제도의 언어 앞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물론 모든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기획, 그리고 제도 이해를 겸비한 일부 인물들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 없는 재주, 규제 회피에 기대던 성공은 더 이상 반복되기 힘들다.
이번 법 제정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디지털 자산은 이제 투기의 영역이 아니라 금융과 산업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특히 K-컬처와 같은 콘텐츠 산업에 있어 이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단기 코인 발행으로는 문화 산업을 키울 수 없다. 콘텐츠, 자산, 금융, 그리고 신뢰가 하나의 궤도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산업이 된다.
돌이켜보면, 300억의 유혹을 거절한 것은 기회를 포기한 선택이 아니었다. 속도 대신 방향을 택한 것이고, 유행 대신 제도를 선택한 결정이었다.
기다림은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 준비의 시간이었고, 구조를 쌓는 기간이었다.
디지털 자산의 시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나 뛰어들 수 있는 무법의 공간이 아니다. 제도가 문을 열 때, 그 문은 준비된 이들에게만 열린다. 그리고 그 문 앞에서 지난 시간의 선택은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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