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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김어준·정청래의 언어, 왜 늘 먼저 구도를 짜는가

조선일보와 정말 다른가, 정치가 설명에 머무를 때 생기는 한계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2/04 [09:07]

유시민·김어준·정청래의 언어, 왜 늘 먼저 구도를 짜는가

조선일보와 정말 다른가, 정치가 설명에 머무를 때 생기는 한계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6/02/04 [09:07]

유시민, 김어준, 정청래가 그리고 있는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정치는 정말 조선일보가 해온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른가. 이 질문에서부터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세 사람의 정치에는 공통된 시선이 있다. 정치는 ‘설명해야 하는 것’이고, 국민이나 당원은 ‘이해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다. 말투와 형식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먼저 하나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현실을 해석한 뒤, 그 해석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 방식에서 정치의 중심은 선택이 아니라 설득이 된다.

 

유시민의 언어는 이 구조를 가장 정교하게 보여준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고, 원칙과 역사 이야기가 풍부하다. 듣고 있으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설명이 끝난 뒤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그래서 지금 뭘 하자는 건가, 그리고 그 판단은 누구의 요구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말은 많지만, 현재의 선택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김어준의 방식은 좀 더 직설적이다. 그는 먼저 판을 짠다. 누가 옳고 누가 문제인지, 지금의 갈등이 어떤 싸움인지부터 규정한다. 청중은 그 판 안으로 들어와 동의하거나 응원하게 된다.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정청래의 발언도 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이다”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왜 지금 이 말이 나왔는지, 그리고 이 말이 당원들의 실제 고민에서 나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칙은 제시되지만, 그 원칙이 지금 어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떠오른다.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도 오랫동안 같은 방식을 써왔다. 먼저 구도를 만들고, 그 구도에 맞게 사건을 배치한 뒤, 독자를 설득한다. 자신들이 정한 ‘현실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정치의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은 다를 수 있지만, 방식을 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다.

 

결국 차이는 진영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생각이다. 정치를 설명의 문제로 보는가, 아니면 선택의 문제로 보는가의 차이다. 설명 중심의 정치는 과거의 언어를 반복하게 된다. 이미 익숙한 구도와 논리를 쓰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 중심의 정치는 다르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실제로 필요한지를 먼저 본다.

 

이 점에서 이재명의 정치 방식은 결이 다르다. 그는 설명보다 결정을 앞세운다. 말이 세련되지 않아 보일 수는 있지만, 기준은 분명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실제로 작동하는가를 먼저 묻는다. 그래서 그의 정치는 늘 현재의 문제를 향해 있다.

 

정치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계속 바뀌는 현실에 맞춰 움직이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 언어는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에 기대어 현재를 끼워 맞추려 한다. 그 순간 정치인은 해설자가 되고, 국민과 당원은 듣는 사람이 된다.

 

유시민, 김어준, 정청래가 꿈꾸는 정치가 정말 새로운 정치라면, 조선일보와의 차이는 말의 방향이 아니라 방식에서 드러나야 한다. 정치를 설명하는 무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선택이 이루어지는 현장으로 돌려놓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정치는 계속 말로만 시끄러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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