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배워야 하는 정치 언어정치가 자기 세 확장으로 끝나면, 정치는 거기서 멈춘다
정치는 싸움으로 출발할 수 있고 그것이 누구하고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현재 맡은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현실적으로는 세를 모으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정치적 존재감을 만들기 어렵다. 문제는 그 싸움이 어디에서 멈추느냐다.
그 싸움이 결국 자신의 세를 키우는 데서 끝난다면, 그 정치는 더 커질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정청래와 이재명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정청래의 정치는 싸움에 강하다.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고, 상대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지적한다. 지지자들은 그의 발언을 통해 “누군가는 대신 싸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아무도 맞서지 않으면 문제는 덮이고, 힘 있는 쪽이 상황을 정리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의 모습에서는 싸움의 방향이 점점 내부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당내 권력 구도, 기존 이재명 대통령 지지 흐름과의 긴장, 내부 세력 간 힘 빼기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그 싸움이 공동의 변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이 순간이 오면 정치인은 급격히 힘을 잃는다. 과거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지점에서 멈췄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싸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싸움의 끝이 어디로 향하느냐다. 전투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향해 열려 있지 않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더 단단히 묶는 데서 끝난다면 그 싸움은 확장이 아니라 고립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늘 수 있지만, 신뢰는 넓어지지 않는다.
정청래의 언어는 종종 이 선에서 멈춘다. 공격은 분명하지만, 그 다음에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그의 정치는 “시원하다”는 감정은 남기지만, “그래서 뭐가 바뀌었나”라는 질문 앞에서는 답이 약해진다.
이재명의 언어는 다른 방향을 택해왔다. 그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지만, 그 싸움이 개인이나 특정 진영의 세를 키우는 데서 끝나지 않도록 하려 했다.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제도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싸움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싸움을 통해 구조를 바꾸려는 태도였다.
이 차이는 정치의 크기를 가른다. 전투가 자신의 세 확장으로 끝나면 정치인은 강한 진영 정치인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전투가 제도와 방향의 변화로 이어질 때, 정치는 진영을 넘어선다. 이재명의 언어가 때로는 불편하고 즉각적인 환호를 얻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늘 싸움 이후를 말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청래가 이재명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더 강하게 싸우라는 뜻이 아니다. 싸움의 목적을 넓히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전투가 지지층 결집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그 전투가 중간 지대와 이후의 국정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싸움을 해도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한다. 세는 커질 수 있어도, 더 큰 정치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전사는 필요하다.
그러나 전사만으로는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 전투가 자신의 세 확장으로 끝나지 않고, 더 넓은 설계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정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지금 정청래에게 필요한 것은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싸움의 끝을 어디로 가져갈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다.
그 언어를 배우는 가장 현실적인 참고 사례가 바로 이재명이 사용해온 정치의 언어다. 그것은 누군가를 흉내 내라는 요구가 아니다. 싸움을 정치로 완성하라는, 매우 현실적인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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