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형적인 ESG 구조-장사꾼인가, 전문가인가난립한 ESG 협회, 지속가능경영의 동반자인가 장사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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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한국의 ESG 생태계는 출발부터 기형적이었다.
기업보다 협회가 먼저 생겼고, 실력보다 간판이 앞섰다.
이름만 바꾼 ESG 협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인증서, 교육 과정, 자문 계약을 앞세운 ‘ESG 장사’가 산업처럼 굳어졌다. 전문성은 검증되지 않았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 ESG는 경영 전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스펙 장사, 또 하나의 관변 비즈니스로 전락했다.
이제 이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 난립한 ESG 협회들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돕는 동반자가 아니라, 보여주기식 보고서와 형식적 인증을 양산한 공범에 가깝다. ESG를 위장과 포장의 도구로 만든 주범이 바로 이 무책임한 중개 산업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ESG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협회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기업 경영의 만능 해법처럼 여겨졌다. 푸른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는 돛배처럼 보였지만, 지금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 떼가 포위한 불확실성의 바다에 가깝다.
ESG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했다. 단기 실적에 쫓기는 경영 환경, 고금리와 경기 침체, 강화된 규제, 그리고 그린워싱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까지 겹치며 기업들은 전례 없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얼치기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조언, 어떻게든 눈앞의 탄소중립 의무를 피해 보려는 편법, 정부 당국의 잦은 유예와 연기, 신뢰를 잃은 일부 평가기관의 난립까지 더해지며 ESG는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글로벌 정세 역시 변수다. 화석연료 회귀를 외치는 정치 지도자들의 등장과 보호무역 기조 확산은 ESG를 둘러싼 국제 공조의 균열을 키우고 있다. ESG가 더 이상 모두의 공감대를 받는 ‘정답’이 아니라,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보고서 몇 권으로 책임을 다한 듯한 ‘보여주기식 ESG’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투자자와 소비자는 숫자와 성과, 그리고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ESG는 이제 기업 이미지 관리용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좌우하는 경영 전략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상어 떼에 둘러싸인 작은 배 위에 선 E, S, G 세 형제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가득하다. 이들을 에워싼 상어들의 이름은 분명하다. 실적 압박, 강화된 규제, 그린워싱에 대한 사회적 비판, 효율성을 앞세운 안티 ESG 흐름이다. ‘착한 경영이 곧 돈이 된다’는 장밋빛 구호만으로 버티기에는 바다가 너무 깊고 험해졌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위기를 ESG의 종말이 아니라 재편의 시작으로 본다. 진짜 문제는 ESG 그 자체가 아니라, 그동안 누적돼 온 형식주의와 피상적 접근이다. 탄소 감축을 비용이 아닌 혁신의 기회로 전환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기 대응의 방패로 삼으며, 사회적 책임을 기업 경쟁력으로 연결시키는 기업만이 이 거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풍랑이 거셀수록 사공은 노를 더 깊이 저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껍데기뿐인 ESG를 걸러내고, 진짜 지속 가능한 기업만을 남기는 거대한 여과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어 떼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기업만이 다음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다.
ESG는 더 이상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언어이며, 경영의 본질이다. 이제 기업들은 묻고 있다. 우리는 이 상어 떼를 뚫고 목적지에 닿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