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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형 교수의 개인전 ‘책거리 10폭 병풍’

10폭 병풍에서는 ‘많음’보다 ‘질서’를,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먼저...

김학영 | 기사입력 2026/01/04 [13:08]

[칼럼] 이미형 교수의 개인전 ‘책거리 10폭 병풍’

10폭 병풍에서는 ‘많음’보다 ‘질서’를,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먼저...

김학영 | 입력 : 2026/01/04 [13:08]

▲ 이미형 교수 作 | 이 병풍은 조선 선비의 교양과 사유, 그리고 지식에 대한 존중을 공간으로 펼쳐 보인 지적 건축물이다. 책은 더 이상 읽히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그림이 되어 서고書庫를 이루며, 지식은 사물의 배열을 넘어 하나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전통 책거리의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된 이 작품은 K-민화가 과거의 양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품격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이 병풍은 책이 쌓인 병풍이 아니라, 지식이 거처하는 하나의 집이다. 책은 사물이 되고, 병풍은 사유의 공간이 된다.

 

[내외신문 김학영 기자]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 10폭 병풍’ 앞에 서면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질서와 평정이다. 병풍을 가득 채운 서책과 기물들은 과시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화면에서 학문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정돈하는 방식이다.

 

전통 책거리의 핵심은 ‘많음’이 아니라 ‘바름’에 있다. 이미형 교수는 이 원칙을 정교하게 복원하면서도, 현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각 폭은 독립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열 폭이 함께 서 있을 때 하나의 사유 체계를 이룬다. 책과 문방구, 도자와 화병, 작은 기물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지식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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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형 교수

 

색채는 절제되어 있으나 단조롭지 않다. 청색의 공간감은 깊이를 만들고, 목재의 갈색은 시간을 축적한다.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택한 이 색의 선택은, 오래 두고 마주할 병풍이라는 매체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병풍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지점은 ‘사람의 부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병풍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책을 읽는 이, 글을 쓰는 이, 사유하는 이의 흔적이 기물 사이에 고요히 남아 있다.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는 말한다. 지식은 소유가 아니라, 머무름의 결과라고...

 

이 작품은 전통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교육, 오늘의 지성, 오늘의 삶에 대해 묻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의 시대에, 이 병풍은 속도를 늦추고 깊이를 회복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이 책거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제안서다.

 

10폭 병풍이라는 규모는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완결의 형식이다. 열 개의 폭은 열 개의 질문이자 열 개의 답이다. 지식은 쌓이되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며, 아름다움은 드러나되 소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이 이 병풍 전체에 배어 있다.

 

이 병풍의 가치는 숫자로도 말할 수 있다. 병풍 시가 1억 원이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는 그 금액 너머에 있다. 이 작품은 공간의 격을 바꾸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자세를 바꾼다. 집이든, 서재든, 공적 공간이든, 이 병풍이 놓이는 순간, 그곳은 사유의 장소가 된다.

 

이번 10폭 병풍에서는 ‘많음’보다 ‘질서’를,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각 폭은 독립된 화면이지만, 함께 놓일 때 하나의 사유 공간이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책과 기물 하나하나에는 쓰임과 자리가 있으며, 그 질서가 곧 삶의 태도라고 믿습니다.

 

전통 책거리의 정신을 존중하되, 오늘의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숨 쉴 수 있도록 색과 구성을 조율했습니다. 이 병풍이 놓이는 곳이 단순히 보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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