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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이전 논란이 보여준 ‘전 직원 피해자’라는 착한 회피

책임을 흐리는 관용, 민주주의를 멈추게 한다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12/29 [11:35]

산업은행 이전 논란이 보여준 ‘전 직원 피해자’라는 착한 회피

책임을 흐리는 관용, 민주주의를 멈추게 한다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12/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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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수 기자    

민주주의를 흔드는 것은 노골적인 적만이 아니다.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은 책임을 흐리는 말들이다. “위에서 시킨 일이다”, “개인이 막을 수 없었다”, “조직 전체가 피해자다”라는 표현들이다. 현실적이고 온건해 보이지만, 이런 언어가 반복될수록 시민의 판단 기준은 사라진다.

 

산업은행 사례가 그렇다. 부산 이전 과정에서 일부는 지시에 따라 앞장섰고, 서울 본점 부지 문제 역시 “정책 결정의 집행”이었다는 말로 설명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논의는 “산업은행 전 직원이 피해자”라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판단하고 선택한 사람과, 그 결과를 떠안은 시민의 구분이 사라진다. 책임이 증발하는 순간이다.

 

얼마 전 산업은행 단식농성장에서 김현준 위원장과 잠시 담소를 나눴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산업은행 이전 정책에 맞서 1096일을 싸워왔다. 이 시간은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방향과 시민 자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런 현장에서 “모두가 피해자였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끝까지 반대한 선택과, 침묵하거나 앞장선 선택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문제가 터졌는데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하면, 그 회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민주주의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불가피한 흐름’으로 포장하는 순간, 시민주권은 작동을 멈춘다.

 

 

민주주의는 연민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구분으로 유지된다. 누가 판단했고, 누가 집행했고, 누가 저항했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비용은 결국 시민이 떠안는다.

 

전 직원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넘어, 책임을 가려내는 것. 거기서부터 시민주권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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