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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사건을 보면서-소년 시절의 잘못을 평생 족쇄로 채우는 사회에 미래는 있는가

과오의 기억만 남기고 회복의 기회는 지우는가

연예계 징벌 여론과 성숙한 사회의 조건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12/07 [08:52]

조진웅사건을 보면서-소년 시절의 잘못을 평생 족쇄로 채우는 사회에 미래는 있는가

과오의 기억만 남기고 회복의 기회는 지우는가

연예계 징벌 여론과 성숙한 사회의 조건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12/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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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수 기자    

최근 배우 조진웅의 10대 시절 범죄 논란이 불거지면서 방송사들은 서둘러 내레이션을 교체하고 출연작의 방영 여부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확인은 일부 이루어졌고, 소속사도 미성년 시절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논란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소년 시절의 과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추방’이라는 즉각적 해결책만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 사회는 소년범을 바라볼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곤 한다. 소년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성장과 교정의 가능성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범죄는 ‘처벌’보다 ‘회복’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법제도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현실의 공론장은 이 원칙을 너무 쉽게 뒤흔든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 개인의 현재를 보지 않고, 그가 지나온 한 시점의 그림자를 확대하여 모든 시간 위에 덧씌우려 한다.

 

이번 논란도 그런 반복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조진웅이라는 배우의 현재는 사라지고, 그가 10대였던 시절의 행위만이 남는다. 어떤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점점 ‘전부 아니면 전무’로 좁아지는 순간이다. 과거의 잘못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한 조각’을 ‘현재의 전체’로 대체하는 오류를 너무 쉽게 범한다.

 

이 지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회복의 서사보다 추방의 서사에 더 익숙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문제를 드러내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활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방식. 시간이 흘렀고, 법적 절차가 종료되었고, 당사자가 반성하고 있다 해도, 하나의 과오는 사회적 생명을 지울 수 있는 절대적 판단 근거가 되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가장 사라지는 것은 ‘왜 회복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소년범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누구에게도 실수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청소년기의 판단 미숙, 무모함, 잘못된 선택은 많은 사람이 경험해왔고, 대다수는 그것을 넘어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공적 위치에 서는 사람에게만 ‘무결한 성장 서사’를 강요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요구이자 사회적 폭력에 가깝다.

 

공인이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지라는 요구는 이해되지만, 책임과 영구적 추방을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태도라 보기 어렵다.

 

이번 논란은 결국 한 개인의 과거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사고를 드러낸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과거의 잘못을 현재에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것인가. 회복과 재기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낙인으로 굳혀버리는 사회인가.

 

과거는 지워서는 안 되지만, 미래를 막는 장벽이 되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갈 것인가이다. 이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과거의 그림자만이 남고,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용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의 미래도 닫아버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엄격한 징벌이 아니라, 더 성숙한 회복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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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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