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동선과 행적은 디지털 흔적으로 촘촘히 남는다. 휴대전화 위치정보, 카드 결제, CCTV, 블랙박스, 그리고 구글 타임라인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정보들은 우리의 기억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으로 남아 범죄 수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된다. 살인율이 떨어진 배경에도 CCTV와 같은 전자적 감시망이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은 이미 익숙하다.
그렇다면 특정인의 과거 행적을 판단하는 데 있어,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보다 디지털 기록이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당연히 제기된다.
김용 전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 역시 그 지점에 서 있다. 검찰은 특정 시점과 장소에서 불법 자금이 전달되었다고 주장했으나, 김용은 구글 타임라인 기록을 제시하며 해당 시각 자신이 그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타임라인은 위성 GPS, 기지국,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다양한 데이터가 융합된 기록으로, 조작의 여지가 거의 없는 기계적 생성물이다. 이는 단순한 주장 이상의 객관적 근거다.
법원이 외면한 디지털 증거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구글 타임라인의 무결성과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구글의 저장·처리 방식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위치정보의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증거의 본질을 오독한 판단이다. 구글 타임라인의 원시데이터는 생성 즉시 저장되고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확보한다. 미국 증거법에서도 기계적으로 생성된 위치기록은 ‘진정성이 자명한 증거’로 인정된다. 우리 법상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업무상 통상문서’에 준하여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
더 큰 문제는 심리 과정의 미진이다. 법원은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고, 추가 감정이나 전문인 신문 절차도 생략했다. 구글에 사실조회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객관적 검증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채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이다. 이는 정의 실현을 위한 재판부의 책무를 방기한 태도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보다 강한 디지털 기록
정치자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검찰은 돈이 오갔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적 물증은 없다. 금융자료, 녹취, 제3자의 확인도 없이 오직 진술에만 의존한다. 그러나 진술은 기억에 기반하며, 기억은 가변적이다. 협박이나 회유로 왜곡될 가능성도 높다. 반대로 디지털 기록은 기억의 오류를 보완하는 장치다. 휴대전화가 남긴 타임라인, 검색기록, 메신저 기록 등은 사실을 기계적으로 복구한다.
수억 원의 금품을 주고받았다면서도 정확한 날짜와 장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진술과, 객관적으로 남아 있는 구글 타임라인 기록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더 믿어야 하는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형사재판의 원칙을 고려할 때, 타임라인이 보여주는 알리바이는 무시될 수 없는 방어권의 핵심이다.
김용은 무죄다
결국 김용 사건은 법의 원칙을 되짚게 한다. 형사재판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 공소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게 있고,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검찰은 오직 진술에만 기댔고, 법원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반대로 피고인이 제시한 객관적 디지털 증거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배척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유·무죄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증거법과 사법 정의의 방향을 가늠하는 분수령이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지만, 디지털 기록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무죄를 말하고 있다면, 법은 이를 귀 기울여야 한다.
김용은 무죄다. 그리고 그 무죄는 단지 개인의 권리를 넘어, 법치주의와 사법 정의를 지켜내야 할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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