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기본소득 논란에 대해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독점한 상위 계층에게는 기본소득이 위협일 수 있다.
‘기본소득을 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과 일부 경제지, 금융기득권 인사들은 기본소득 논의가 나올 때마다 “그 길의 끝은 베네수엘라”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기본소득을 포퓰리즘의 상징으로 몰아가며, 마치 현금을 나눠주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처럼 프레임을 짠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극단적 단순화이며, 경제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정치적 선전일 뿐이다.
베네수엘라가 몰락한 주된 이유는 기본소득이 아니다. 석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한 단일 경제 구조, 이를 기반으로 한 수입 재정을 정치적으로 남용한 구조적 실패가 본질이다.
특히 차베스 정권은 국가가 석유 수익을 독점하고 이를 무분별하게 복지에 살포하면서 산업다변화와 민간 경제 역량을 고사시켰다.
여기에 부패한 권력층의 예산 유용, 중앙은행의 정치화, 미국의 제재까지 더해져,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사회 붕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즉,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기본소득’이라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국가 운용 방식의 총체적 실패다.
더구나 한국은 베네수엘라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나라다.
한국은 석유나 천연자원 같은 단일 품목에 의존하지 않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이차전지, 바이오헬스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중심으로 다층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수출 상위 10개 품목이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할 만큼 다변화되어 있으며, ICT·AI 기반 플랫폼 산업과 금융, 콘텐츠, 물류까지 연결된 산업 구조는 글로벌 수요 충격에 대응 가능한 회복 탄력성을 지닌다.
또한 한국의 조세 체계는 OECD 평균 수준의 징세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득세·법인세를 통한 세입 기반도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법률과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인플레이션 관리, 통화량 조절, 외환시장 안정 등 거시경제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신뢰가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은 기본소득이 단지 ‘돈 뿌리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 구조 전환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복지·경제정책으로 설계될 수 있는 배경이다.
한국은 지금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노동시장 밖에 있는 고령층,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층,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비정형 취약계층은 기존의 선별적 복지 체계로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제공하고, 소비 여력을 확장시켜 내수를 회복시키는 촉매제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복지 확대가 아니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회복시키는 재정적 재설계의 일부다.
더 나아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의 도입은 새로운 형태의 기술 실업을 야기하고 있다.
자동화에 밀려난 노동자들이 재교육과 직업 전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은 일종의 ‘전환소득’으로 기능할 수 있다.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보장될 때에야 비로소 ‘모험할 자유’가 생기고, 이는 곧 창업, 전직, 혁신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단지 복지를 위한 재원이 아니라, 미래형 재정 기반 설계 능력도 갖추고 있다. 디지털세, 탄소세, 플랫폼세, 국토이익환수세 등 다양한 재정 혁신 도구가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추가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
또한 기존 조세 구조의 개선만으로도 재정 여력은 충분히 창출 가능하다. 즉, 기본소득은 세금을 더 걷자는 단순 논리가 아니라, 조세 구조의 개혁과 함께 성장 기반을 재구성하자는 중장기 전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토지배당형 기본소득’은 국토 불로소득을 환수해 국민에게 돌려주는 구조이며, 탄소세 기반 기본소득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국민에게 에너지 전환 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본소득 모델은 현실의 경제 구조와 결합한 설계 가능한 복지정책으로 진화 중이다. 산업구조 전환, 사회안전망 강화, 소비 진작, 미래세대의 공정한 출발선을 마련하는 다층적 효과가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베네수엘라’를 외치며 공포 프레임을 반복한다.
이는 정책 논의의 본질을 회피하고, 국민의 불안을 자극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형적인 이념 전술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베네수엘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부패한 독재와 자원 의존 경제의 파탄일 뿐이다.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독점한 상위 계층에게는 기본소득이 위협일 수 있다.
자원의 재분배는 결국 권력의 재분배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자산 독점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고소득층에게 보다 공정한 조세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은 “나라가 망한다”는 말로 자신들의 이익 구조를 방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 미래를 책임지는 정치는, 특정 집단의 기득권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을 중심에 둬야 한다. 기본소득은 그런 전환의 첫걸음일 수 있다. 단지 복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재설계하고, 경제를 재구조화하는 국가 전략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통제되지 않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재정정책이 균형을 이루는 성숙한 사회의 선택지다. 베네수엘라라는 허상을 반복하는 정치는 과거의 낡은 공포에 기대는 무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불안이 아니라, 설계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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