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 대통령의 전남-광주 토론회를 보고.."참 한심한 자치단체장들"-“산단 개발로는 미래 없다”―지역 균형발전의 낡은 공식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광주·전남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은 형식적으로는 지역의 고충을 듣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는 자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현 정부가 구상하는 균형발전 전략의 방향성과 의지, 그리고 시대 인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이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중심축으로 광주 군공항 이전과 국가산단 재편, AI 산업 인프라 확충, 청년 일자리 및 교통망 개선 등 여러 의제를 두루 아우르며 남도권이 한국의 새로운 산업재편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오히려 도드라진 것은, 1970년대 개발주의의 잔재를 반복하려는 전남도정의 고루한 시선과 접근법이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에너지 고속도로’, ‘국가산단 전략 재설계’, ‘KTX 노선 확충’ 등의 의제가 분명 의미 없는 과제는 아니지만, 전남도지사가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여전히 “산업단지를 만들고 기반시설을 확충해 외부 기업을 유치하자”는 식의 전근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1974년 포항제철 건설의 흥분과 1980년대 창원기계공단의 설계도를 아직도 책상 서랍 속에서 꺼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현시대는 ‘토지 기반 중심의 산업개발’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데이터 기반의 가치창출’, ‘지속가능성 중심의 분산 네트워크 사회’로 전환된 지 오래다.
즉, 생산단지를 짓는다고 인구가 몰리고, 공장이 들어선다고 청년들이 유입되던 시대는 끝났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기술 탈공장화, 비대면 경제의 확산 등 구조적 대전환의 복판에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지역에 국가산단 하나 지어주세요”, “에너지 고속도로 깔아주세요”라며 정부에 요구하는 전남도정의 전략은 스스로가 지금 어떤 시공간에 놓여 있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에너지 대전환’은 단순한 시설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철학의 전환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그것을 여전히 “공장과 인프라를 깔면 청년이 돌아온다”는 ‘개발주의 신화’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긴다. 만약 정부가 1조 원의 예산을 전남의 특정 지역에 쏟아붓는다면, 그것이 과연 전남도민 전체의 삶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특정 입주기업과 하도급 네트워크, 정치적 표심의 재편을 위한 계산서인가?
전남도지사나 광주시장은 과감하게 ‘지역 소득 보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중심에 놓았어야 했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대전환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만큼, 그 혜택도 지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에너지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이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의 일부를 지역화폐 혹은 현금으로 배당받는 제도, AI·에너지 연계기업에 지역민 고용을 일정 비율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 청년 창업 시 에너지 사용료 전액 감면과 같은 과감한 역차별적 지원이야말로 진짜 균형발전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또, 수도권 대기업을 지역으로 끌어오는 게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 내에서 스스로 생산하고, 수익을 배분하고, 창업이 순환되는 소규모 자율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방정부는 이제 투자유치가 아니라 ‘소득 유치’ 중심으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며, 외자 기업이나 대기업의 유치만을 유일한 해결책처럼 여기는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남도정은 지금 시대의 물음을 놓치고 있다. 글로벌 기술생태계는 물리적 거리보다 연결망과 인재의 질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애초에 외자기업이 지역으로 이전하는 이유는 단순한 땅값 때문이 아니다.
인재 확보 가능성, 규제 유연성, 정책 실험의 자유도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는 여전히 “우리 땅은 싸고 기반시설은 갖춰드릴게요”라는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조차 신뢰하지 않는 방식이다. 글로벌 스타트업이 지역으로 오기 위해선 창의적 기획이 보장되고, 현지 시장을 바로 테스트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역에 ‘아무나 유치하자’가 아니라 ‘누구를, 왜, 어떻게 정착시키고 이들이 지역과 어떻게 수익을 공유하게 할 것인가’라는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책은 ‘일자리 유치’가 아니라 ‘소득 창출 구조의 설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정책 예산도 그런 구조 위에 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계통 포화 문제는 단순히 송전탑을 하나 더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전력 계통을 중앙집중형에서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하고, 마이크로그리드 및 스마트그리드 기반의 자율 에너지 시스템으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지방이 단지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과 유통의 기초단위로 작동할 수 있다.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태양광, 가정형 ESS 설치 지원, 전력 P2P 거래 허용과 같은 구조적 실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아니라, 에너지 소득 구조 자체를 지방이 보유하는 시스템을 요구했어야 했다. 그런 방식으로 지방은 더 이상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 실험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남도정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 없이 여전히 대규모 시설, 중앙정부 지원, 외부 투자자 유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지방이 국가를 구한다’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지방정부 스스로가 사고방식의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또한 청년 일자리 문제 역시 단지 고용 숫자가 아니라 ‘삶의 질’이라는 가치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정규직 자리가 아니라, 지역에서 자유롭게 창작하고,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생태계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보다 규제 완화와 실험공간의 제공이 더 중요하다.
지역에 정착한 청년 스타트업이 지역 수요에 맞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어내고, 그 성과가 다시 지역 소득으로 순환되는 구조야말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다.
지역 대학과 협력해 창업 연계형 학사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실패한 창업자에게도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금융·세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청년 창업지원 예산 확대’라는 발언도 그 자체보다 구조 설계의 깊이가 관건이다.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진짜 균형발전은 ‘다른 발전’을 추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서울이 하는 방식, 대기업이 구사하는 전략을 지방에서 복제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실패를 예약하는 것이다. 지방은 지방의 언어로, 지방의 문법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권과 자율,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는 공간이 주어질 때만 가능하다. 지방정부가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타 면제와 국가 예산 확보에만 매달린다면, 그 어떤 위대한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책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전환은 국가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은 분명 시대적 통찰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할 당사자인 지방정부가 얼마나 그 의제를 자기 언어로 받아들이고 구조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지금은 '누가 돈을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를 설계하고 주도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뒤처지는 지역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도 실패한 전략을 반복하는 운명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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