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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왕실의 그림자와 저항... 마흐라 공주의 이혼 선언이 던진 충격파

여성의 자율성과 전통의 경계에서 
두바이 왕실의 권력, 가족, 억압의 초상 
마흐라 공주의 결단이 아랍사회에 던진 미래적 질문

조용준 | 기사입력 2025/06/19 [09:18]

두바이 왕실의 그림자와 저항... 마흐라 공주의 이혼 선언이 던진 충격파

여성의 자율성과 전통의 경계에서 
두바이 왕실의 권력, 가족, 억압의 초상 
마흐라 공주의 결단이 아랍사회에 던진 미래적 질문

조용준 | 입력 : 2025/06/1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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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또하나의 건축 기적"...쌍용건설, 두바이 ‘아틀란티스 더 로얄’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딸, 마흐라 공주의 이혼 선언이 중동 왕실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남편의 외도를 폭로하고 이혼을 발표했으며, 아버지는 즉각 전 사위에게 에미리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억압적인 전통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한 여성이 왕실 권력의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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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흐라 공주 (인스타그램 캡쳐)    

 

마흐라 공주는 2023년 봄, 먼 친척인 셰이크 마나 빈 모하메드와의 성대한 결혼식을 통해 공식적인 왕실 부부로서 주목받았다. Ezra Couture의 드레스를 입은 결혼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지만, 그 뒤에는 이미 감정적 소외와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임신을 알리며 잠시 화목한 가정을 기대하게 했으나, 2024년 여름 공개된 메시지 속에는 ‘우리 둘만의’라는 문구가 등장해 균열의 조짐을 암시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2024년 7월에 벌어졌다. 마흐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편의 외도를 암시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이혼”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관계의 종결을 선언했다. 중동 이슬람 사회에서, 특히 왕실 여성으로서 이혼을 직접 언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이는 단순한 결혼 파탄을 넘어선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 상황에 대해 전례 없는 대응을 취했다. 그는 딸의 전 남편에게 에미리트 입국 금지를 명령했고, 이는 사실상 왕실에서의 완전한 추방이었다. 보통 왕실 스캔들은 조용히 덮이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에는 공개적이고 즉각적인 처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마흐라는 이후 SNS를 통해 아버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딸을 홀로 양육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이는 아랍 전통에서 여성의 위치를 정형화해왔던 오랜 관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마흐라는 명확히 선언했다. “내 삶은 이제 내 것이다.”

 

마흐라 공주의 이 같은 선언은 그녀의 성장 배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994년 그리스인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마흐라는 원래 기독교인으로 자랐고, 유럽식 교육과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열여섯 살에 두바이로 이주한 뒤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름도 ‘크리스티나’에서 ‘마흐라’로 바꾸었다.

 

이슬람으로의 귀의 이후에도 그녀는 서구의 가치관과 자유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영국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두바이 정부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녀는 UAE 내 여성 인권 보호에 대한 열망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퍼스 바자 아라비아와의 인터뷰에서 마흐라는 “나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마흐라의 전 남편인 셰이크 마나는 UAE 군 복무 경험과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인물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인 왕자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권위적인 태도와 일부다처적 행동이 존재했으며, 이는 마흐라에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왕실 내 여성의 인권 문제는 예전부터 계속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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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와 아랍에미레이트가 디지털 자산 대국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화려한 사업과 국제 인맥을 자랑하는 지도자다. 그는 수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노박 조코비치나 아르투로 비달과 같은 인물들과의 친분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삶은 그만큼 복잡하고 불투명했다. 1979년 첫 부인과 결혼해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2004년에는 요르단 공주 하야 빈트 후세인과 재혼했지만 2019년 이혼하며 국제적인 재판에서 패소했다.

 

하야 공주는 런던에서 셰이크 모하메드를 상대로 자녀에 대한 학대 및 감금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고, 막대한 위자료와 자녀에 대한 부모 권리를 박탈당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두바이 왕실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지를 국제 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마흐라의 자매들 역시 왕실의 억압을 피해 탈출을 시도했던 전력이 있다. 샴사 공주는 2000년 케임브리지에서 실종됐고, 라티파 공주는 2018년 카포에이라 코치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인도 해군에 의해 포획되어 두바이로 송환되었다. 라티파의 생존은 국제적 관심과 외압 덕분에 겨우 확인될 수 있었다.

 

마흐라의 이혼은 단지 한 여성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두바이 왕실 내부에서부터, 중동 사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인권과 자율성, 그리고 억압적인 관행에 대한 전방위적 질문을 제기한다. 전통과 권위에 맞선 한 여성의 결단은 앞으로 유사한 사례에 대한 판례이자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마흐라의 SNS는 수십만 명의 여성 팔로워에게 격려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젊은 세대에게 강력한 상징이 되고 있다. “왕실 여성도, 우리처럼 고통받고 싸운다”는 메시지는 압도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사건은 장기적으로 아랍권에서 여성의 이혼권, 자녀 양육권, 재산권 등 법적 권리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UAE가 서구 사회와의 관계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개혁적 이미지’는 이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한편 두바이 왕실 내부에서도 이러한 공개적 반발이 반복될 경우, 셰이크 모하메드 체제의 권위적 통치 방식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억압과 보복보다는 투명성과 대화의 통치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마흐라 공주는 지금 딸과 함께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두바이의 외곽에서 자율적인 삶을 추구하며, 외부 인터뷰는 삼간 채 조용한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결단은 이미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두바이의 공주는 독립했지만, 평범한 여성들은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물음은 단지 두바이만의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부장제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마흐라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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