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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장부상 흑자로 '체질 개선' 선언…IPO 앞둔 재무수술의 전모

자본잉여금 2조 3천억으로 결손금 2조 2천억 상계…법적 허용된 ‘장부개선’

자사주 매입으로 시장 신뢰 확보 시도…기업가치는 6,300억 수준으로 축소

쿠팡과의 경쟁 속 투자유치·지분 희석·리픽싱 조항 등 IPO 성공 여부 최대 관건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5/06/17 [09:03]

컬리, 장부상 흑자로 '체질 개선' 선언…IPO 앞둔 재무수술의 전모

자본잉여금 2조 3천억으로 결손금 2조 2천억 상계…법적 허용된 ‘장부개선’

자사주 매입으로 시장 신뢰 확보 시도…기업가치는 6,300억 수준으로 축소

쿠팡과의 경쟁 속 투자유치·지분 희석·리픽싱 조항 등 IPO 성공 여부 최대 관건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5/06/17 [09:03]

이커머스 스타트업 컬리가 2조 원이 넘는 누적 결손금을 재무제표에서 상계하는 회계적 조치를 단행했다. 그 이면에는 IPO를 겨냥한 복잡한 재무 전략과 투자자 설득, 그리고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노력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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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마켓컬리 홈페이지    

 

컬리는 자본잉여금 2조 3천억 원을 활용해 누적 결손금 2조 2천억 원을 상계하는 회계처리를 통해 이익잉여금 510억 원을 기록했다. 이 방식은 한국 상법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절차다. 그 결과 컬리는 장부상 이익을 확보하며 ‘적자 기업’이라는 오랜 꼬리표를 일시적으로 떼어냈다. 이 같은 조치는 특히 재무 건전성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차단하고, IPO를 앞두고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슬아 대표 체제 아래에서 컬리는 여러 차례 투자 유치를 진행해왔지만, 창업자 지분율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김 대표의 지분율은 5.69%에 불과하다. 이는 스타트업 창업자치고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며, IPO 이후 경영권 안정성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남긴다. 현재 최대주주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 13.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일반 주주들이 41.18%를 차지하며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컬리의 주주구조가 복잡해진 배경에는 RCPS(전환상환우선주), CPS(전환우선주)와 같은 투자계약의 영향이 적지 않다. 특히 2023년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의 1,200억 원 규모 투자는 리픽싱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이 조항은 실적이 부진할 경우 투자자의 지분율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장치로, 스타트업 투자계약에서 자주 활용되는 수단이다. 2024년도 컬리가 영업이익 손실을 기록하면서 리픽싱 조항의 발동 가능성이 현실화되기도 했다. 이는 컬리가 실적 부담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투자에서는 종종 경영진의 단기 실적보다는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신뢰가 우선되곤 한다. 그러나 리픽싱 조항이 작동하면 창업자의 지분 희석과 경영권 영향력 약화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번 컬리의 재무제표 상 결손금 상계 작업도 이러한 지분 희석 가능성을 견제하고, 투자자와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컬리는 이와 함께 자사주 매입이라는 카드도 꺼내 들었다. 최근 컬리는 주당 1만5천 원에 15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할 때 컬리의 기업가치는 약 6,300억 원 수준으로 형성된다. 유니콘 기업으로 불리던 전성기 대비 기업가치가 상당폭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리는 비상장사임에도 자사주 매입을 단행하며 주가 안정화와 기존 투자자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유인을 마련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또한 배당가능이익 확보와도 연결된다. 이번 결손금 상계처리를 통해 이익잉여금 500억 원 수준을 확보한 컬리는 배당·자사주 매입 등의 정책 여력을 마련했고, 이는 곧 재무 체력 회복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IPO 이전부터 외부에 ‘재무 안정성’을 강조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그러나 컬리가 처한 시장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쿠팡이라는 거대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고, 일반상품 확장 과정에서 물류·배송 등 인프라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다. 컬리의 신선식품 전문 물류 시스템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이를 일반 커머스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캡엑스(capex, 시설투자) 부담은 상당하다. 냉장·냉동 물류망 확대, 풀필먼트 투자, 물류센터 증설 등 설비 투자 없이 안정적 흑자전환은 쉽지 않다.

 

컬리는 장기간 만성적자 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회계적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테크니컬한 재무수술은 일부 플랫폼 기업들 사이에서 흔히 활용되는 기법이다. 결손금 상계, 이익잉여금 확보, 자사주 매입 등을 동원해 IPO를 준비하는 과정은 업계의 ‘정석 수순’처럼 자리 잡았다.

 

결국 이번 회계처리는 컬리가 단기적인 흑자전환을 과시하기 위한 ‘성적표 만들기’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장기간 투자유치 과정에서 누적된 자본잉여금을 활용해 적법하게 장부상 결손을 해소한 것은 법적 문제는 없는 정상적 경영행위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 모든 작업의 최종 승부처는 IPO 이후 시장의 냉정한 평가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재무적 체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쿠팡과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컬리는 이제 적자 기업에서 탈피한 '재무 안정 기업'으로서 새로운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그 무대 위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증명하는 일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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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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