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민석에겐 1000만원·쪼개기 후원금 잣대 들이대며, 한덕수에겐 왜 침묵했나 — 언론, 먼저 사과부터-검증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의 형평성은 더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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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인사검증 공방이 연일 치열하다. 정치자금법 위반 전력, 사적 채무, 재산증식, 자녀 입시 활용 의혹, 여기에 후원금 거래 의혹까지. 보수언론과 일부 중도언론은 연일 김 후보자를 겨냥한 새로운 의혹 보도를 쏟아내며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은 거의 매일같이 김민석 이름 석 자를 머리기사에 올려 놓고 있다. 검증 자체는 당연히 필요하다.
국민을 대신해 고위공직자를 감시하고 철저히 따지는 것은 언론과 정치권의 책무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목격하는 풍경은 검증이 아니라 이중잣대의 정치공세에 가깝다. 같은 기준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코드에 따라 검증의 잣대가 달라지는 한국식 인사검증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새롭게 쏟아낸 의혹만 보더라도 이중잣대의 구조가 분명하다. 김민석 후보자가 과거 차입한 1억4000만원의 일부 채권자 중 한 명이 그 이후 후원금 400만원을 냈다는 것을 두고, "돈을 빌려주고 정치자금 후원까지 한 수상한 돈거래"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그 채권자의 이름이 과거 불법 정치자금 공여자로 검찰 수사에 연루되었던 인물이라는 점까지 소환하며 과거 전력까지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같은 인물이 최근까지 김민석 후보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는 사실도 보도하며 의혹을 키웠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불법 정치자금을 준 장본인과 또다시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인 만큼 어떤 배경이 있는지 제대로 밝혀야 할 것"이라며 압박했고, 재산증식과 아들의 입법활동 입시활용 가능성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연결했다.
이쯤 되면 검증이 아니라 낙마몰이용 압박 프레임이 가동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분명히 검증되어야 한다. 공직 후보자의 정치자금 관리, 채무변제, 후원금 수수 과정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면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묻고 있는 핵심은 왜 똑같은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 앞에서는 언론이 침묵했느냐는 것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후보자 검증 당시를 떠올려보자.
한덕수 후보자는 공직에서 퇴임한 뒤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수년간 근무하며 막대한 고문료를 받았다. 김앤장은 대기업·금융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두는 거대 로펌으로, 현행 전관예우 논란의 상징이었다.
총리라는 국가의 2인자 자리에 오르기 직전까지 이해충돌 가능성이 뚜렷한 로펌 고문 경력을 가졌지만, 언론은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풍부한 경륜’으로 포장했다.
배우자의 미국 영주권 문제, 장기간 미국 거주 중 재산 증식 과정, 수십억대의 재산보유 및 다주택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보수언론들은 “국정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프레임을 내세워 이 문제들을 봉인했다. 후원금 거래처럼 채권자의 이름 하나까지 추적하며 상세히 파고들지도 않았다.
누가 빌려줬고, 누가 후원했고, 그 뒤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었는지 파헤치지 않았다. 당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였고, 언론은 총리 인사청문회를 '속행 없는 형식적 검증'으로 만들어주었다.
지금 김민석 후보자에게 들이대는 1000만원 후원금, 쪼개기 후원 의혹, 입법활동 활용 가능성 잣대는 왜 그때 한덕수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는가?
당시는 김앤장 고문료 수억 원의 구체적 입금 내역, 거래 상대방, 고문 역할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심층보도도 실종되었다. 한덕수 후보자 역시 자산증식 구조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지만, 누구도 ‘어떤 배경이냐’고 묻지 않았다.
언론이 지금 김민석에게 들이대는 '불법 제공자의 과거 전력', '후원회장 경력', '정치자금법상 이중 관계', '세금 내고도 늘어난 재산 출처' 등 정밀 회계추적식 검증이 그 당시엔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김민석 후보자의 이슈는 청문회 과정에서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국민 혈세와 국가 정책을 운영할 국무총리라면 공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검증은 어디까지나 형평성과 공정성을 전제로 작동할 때만 그 권위가 성립된다. 정치적 진영에 따라 칼날의 세기가 달라지는 검증은 이미 검증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공작이고 정치도구일 뿐이다. 지금 언론이 김민석에게 들이대는 수많은 의혹들은 대부분 과거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수두룩하게 등장했던 문제들과 유사하거나 더 경미하다.
윤석열 정부 당시 김승희·정호영·김인철·박순애·한동훈 등 장관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은 자녀 입시 비리, 가족 특혜, 음주운전, 후원금 비리 등등 지금 김민석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보다 더 직접적인 위법성 논란이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의 반응은 ‘조용한 청문회’, ‘정치공세 자제’, ‘국정안정 우선’이었다. 지금의 보도양태를 보면, 언론이 스스로 당시의 침묵에 대한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성찰도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언론이 공직자 검증에 있어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의 이중잣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한덕수에겐 관대하고 김민석에겐 잔혹한 이 구조가 반복되는 한, 국민은 언론의 검증을 신뢰하지 않는다. ‘내 편이면 대충 넘어가고, 상대 진영이면 끝까지 파내라’는 식의 검증은 결국 언론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파괴하는 일이다.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공정한 검증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 언론이 김민석을 향해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먼저 국민 앞에 "왜 우리는 한덕수에겐 그리 묻지 못했는가"를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