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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투표함 지킴이들] 내 표는 밤새 안녕했을까…“선거함 옆에서 날밤새운 시민들”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5/06/02 [16:19]

[심야의 투표함 지킴이들] 내 표는 밤새 안녕했을까…“선거함 옆에서 날밤새운 시민들”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5/06/02 [16:19]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밤, 인천의 한 사전투표 보관소 앞 복도에는 시민들이 모여 밤샘 감시를 이어갔다. 자신이 행사한 한 표를 직접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시민단체 ‘시민의눈’과 ‘부정선거방지대’를 통해 자발적으로 현장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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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의 투표함 지킴이들] 내 표는 밤새 안녕했을까…“선거함 옆에서 날밤새운 시민들”    

 

'시민의눈' 활동은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부터 사전투표함이 일반 상가건물 등에 보관되고, 선관위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야간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건물 인근에서 밤을 지새우며 사전투표함을 지키기 시작했고, 선관위에도 CCTV 실시간 감시와 시계 비치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현재는 일정한 장소에서 실시간 CCTV 시청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개선됐지만, 감시 가능 공간이 제한적이고, 보관소 대부분이 일반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29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인천의 한 선관위 보관소 앞 복도에서 벌어진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해당 보관소는 지하주차장을 포함한 다층 상가건물에 있었고, 사전 예약을 마친 시민들은 층별로 흩어져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자정 무렵, 선관위 직원들이 퇴근한 뒤 “3층에 빨간 조끼를 입은 청년 두 명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각 층에 있던 시민 7명이 3층 복도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시민의눈’과 ‘부정선거방지대’ 소속 시민들이었다.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투표함의 안전을 걱정하는 시민들이었다. 양측 시민들은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복도 한켠에 자리를 잡고 경계를 이어갔고, 현장에선 “부정선거방지대 등장 시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단체방에 공유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선 시민들 간 마찰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 인천에서는 오히려 어색한 동거 속에서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기자에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내 한 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발로 차면 깨질 유리문 하나 사이에 내 투표함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만약 누군가 불을 지르면 어쩌냐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내가 부정선거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선거관리 체계에 빈틈이 보이니까 걱정돼 나왔다”며 “이런 시민의 감시가 필요 없는 공정하고 신뢰받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특히 CCTV 접근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현재는 선관위의 특정 장소에서만 CCTV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진짜 감시냐”는 지적과 함께 “국민 누구나 인터넷으로 전국 투표함 CCTV를 실시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사전투표함을 왜 일반 상가 건물에 보관하는가, 국립시설 등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날 현장은 단순한 감시를 넘어 ‘신뢰’의 문제를 상기시켰다. 선관위가 한때는 투표의 공정성을 상징하던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양 진영 모두로부터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시민들이 선거의 공정성과 투표의 무결성을 걱정하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는 이 현장을 두고 “극단적 정치 편향의 산물”이라 비판할지 모르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선거관리 시스템, 보안이 허술한 투표함 보관 환경, 제한된 정보 접근성 등이 시민들을 거리로 이끈 것이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한 지역에서 벌어진 시민 감시의 풍경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인 ‘투표’조차 시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징후다. 선관위는 “부정선거 주장”이 아니라 “불신의 원인”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하며, 시민이 안심할 수 있는 선거환경을 위해 더욱 투명하고 공개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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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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