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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기원과 역사

지역 갈등의 중심에서 스포츠로: 축구의 탄생과 발전

규칙의 체계화와 세계화를 이끈 잉글랜드의 역할

현대 사회에서 축구가 가진 문화적·사회적 의미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4/12/17 [08:31]

축구기원과 역사

지역 갈등의 중심에서 스포츠로: 축구의 탄생과 발전

규칙의 체계화와 세계화를 이끈 잉글랜드의 역할

현대 사회에서 축구가 가진 문화적·사회적 의미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4/12/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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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후반, 잉글랜드에서 촬영된 초기 축구 경기의 모습. 당시 선수들의 복장과 경기장의 모습을 통해 현대 축구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축구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기원의 뿌리를 살펴보면, 현대의 축구와는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축구는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그 시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지역 사회 간의 격렬한 패싸움이었다.

 

이는 동네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폭력적 양상을 띠었다. 공을 차는 행위 자체는 세계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으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축구의 원조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마치 쌀이나 밀가루의 기원을 따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본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중국은 삼국지와 같은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축구가 자신들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 멸망 즈음 축구와 유사한 스포츠가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영화 ‘적벽대전’에서 축구와 유사한 공놀이 장면을 예로 든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도 기원전 100년 전후로 유사한 형태의 공놀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하며, 축구의 기원은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문화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국은 현대 축구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축구가 확산되면서 공을 차는 방식이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형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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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공식 국제 축구 경기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해밀턴 크레센트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세계 최초의 공식 국가대표 축구 경기 장이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으며, 국제 축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19세기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창설되면서 더욱 체계화되었고, 1872년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최초 지역 대항전이 열렸다. 이후 축구는 리그 형태로 발전하며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축구는 대영제국의 식민지 확장과 함께 세계 각지로 퍼졌고, 이를 통해 현대 축구의 기반이 다져졌다.

 

축구는 귀족 스포츠였던 골프나 테니스와는 달리 서민들이 쉽게 즐길 수 있었다. 과거 90년대에는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누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었으며, 돼지의 오줌보를 사용해 공을 만드는 등 창의적인 방식으로 축구를 즐겼다. 흥미롭게도, 초기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폭력적 요소를 포함한 게임이었다.

 

이는 동네 사람들 간의 경쟁심을 고취하고, 지역 사회의 단결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축구의 폭력적 성격은 중세시대에 종교와 국가적 통제로 인해 제한되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황과 귀족들은 축구의 폭력성을 문제 삼아 이를 금지하려 했다. 1300년대에는 영국에서 축구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이는 종교적 이유와 사회적 통제를 목적으로 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축구를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종교적 금지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고, 이러한 열망은 축구가 현대 스포츠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축구의 규칙은 점차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으며, 이는 19세기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1823년 럭비 지역에서 손으로 공을 다뤄도 괜찮다는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축구와 럭비가 분화되었고, 1863년에는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설립되면서 현대 축구의 규칙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1888년에는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12개 팀이 참가한 최초의 축구 리그가 탄생했다.

 

축구는 지역 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스포츠로 발전했다. 특정 국가가 국제 대회에서 승리하면 해당 국가의 국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준다. 이는 중세 시대 축구에서 동네 간 자존심 싸움으로 시작된 감정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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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 내 훌리건 난동 장면 경기 중 일부 팬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선수와 다른 관중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축구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    

 

현대의 축구 팬들은 특정 팀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와의 유대감을 강화하며, 이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영국에서는 2부 리그나 3부 리그의 팀을 응원하는 팬들도 많으며, 이는 축구가 단순히 상위 리그의 유명 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축구 문화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영국의 훌리건 문화는 과거 축구 팬들이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훌리건 문화는 축구의 경쟁심과 결합해 팬들 간의 패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영국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우려로 받아들여졌고, 축구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훌리건 문화는 축구 팬들의 열정이 지나친 방향으로 표출된 결과라는 점에서, 축구가 지역 사회와 개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축구의 규칙은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지만, 축구의 세계화는 다양한 국가의 노력과 참여로 이루어졌다.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며 성장한 후, 군인이 되어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축구가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벨기에는 축구를 통한 수익 창출에 관심을 가지며 국제 축구 연맹(FIFA)을 공동 설립했다. FIFA는 축구의 규칙을 국제적으로 통일하고,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국제 대회를 통해 축구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결국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축구는 폭력적이고 단순한 놀이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했다. 이는 축구가 가진 단순한 규칙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 덕분에 가능했다.

 

축구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지역 사회의 결속력과 자부심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축구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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