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 남짓, 고시원의 삶을 묻다27년간 머문 신림동, 고시생에서 잊힌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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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3평 남짓한 공간 안에는 작지만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불 지필 곳은 없지만,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고시원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추적 60분》은 이런 고시원의 문을 두드리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7년 전, 신림동의 고시생으로 시작해 여전히 고시원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중년 남성이 있다. 그는 1996년에 신림동에 자리 잡았다. 한때 고시생으로 합격을 꿈꿨지만, 시험에 실패한 후 경비업과 막노동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힘겨운 삶 속에서 그는 결국 고시원을 떠나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신림동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때 합격을 위한 고시생들이 모여들던 고시촌은 이제 생계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변했다. 신림동 지역의 고시원 주민들을 돕고 있는 이영우 신부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신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건강 문제나 사회적 단절로 인해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신림동의 고시원은 투명인간처럼 존재하지만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고 있다.
한편, 서울의 다른 지역에 위치한 고시원은 또 다른 색채를 띤다. 신촌의 한 고시원은 외국인 유학생과 대학생들의 첫 거주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한 소녀는 케이팝에 빠져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신촌 고시원에서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있다.
이곳은 마치 외국 대학교의 기숙사를 연상시킨다. 서울 강남의 고시원은 또 다른 꿈을 좇아 온 청년들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 출신의 김종백 씨는 서울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고시원은 살기 힘든 공간이라기보다 희망을 향한 출발점이다. 그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고시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이는 서울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고시원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고시원이 희망의 공간만은 아니다. 가족 해체와 사업 실패로 인해 고시원으로 밀려온 이들도 많다. 한때 가족의 중심이자 사업체의 대표였던 이들은 고시원에서 과거의 삶을 되새기며 다시 일어서기를 꿈꾸고 있다. 용산구 고시원에 거주 중인 최권표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는 주변의 도움에 감사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자동차 광택 기술의 권위자였던 정삼선 씨는 현재 가족과 떨어져 고시원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꿈을 잃지 않았다. 이처럼 고시원은 실패와 좌절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기능하고 있다.
고시원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고독사 사례 중 11%가 고시원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는 이 공간이 가진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청량리의 한 고시원을 운영하는 박영숙 씨는 스스로를 고시원 주민들의 엄마라고 부른다.
그녀는 서울 생활의 시작을 모텔 청소로 시작해 현재는 고시원 주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세 명의 거주자를 배웅했다. 영숙 씨는 매일 고시원 주민들의 안녕을 묻고, 때로는 암 환자인 주민의 병원 동행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녀는 복날에는 닭죽을 끓여 거주자들에게 대접하며, 고시원의 거주자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추적 60분》이 바라본 고시원은 단순한 주거 공간 그 이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독립의 공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마지막 장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고시원의 3평 남짓한 공간에 응축되어 있었다. 《2023 고시원 르포, 7제곱미터의 삶》은 2023년 8월 4일 밤 10시, KBS1TV를 통해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