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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벽 뒤의 감옥

질서가 완성한 세상, 감정은 병으로 취급되다

편리와 효율 속 자유를 잃어가는 현대인

우리는 과연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었는가?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4/12/06 [10:09]

투명한 벽 뒤의 감옥

질서가 완성한 세상, 감정은 병으로 취급되다

편리와 효율 속 자유를 잃어가는 현대인

우리는 과연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었는가?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4/12/06 [10:09]

기원후 29세기, 세상은 완벽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 율법표'에 따라 생활하며, 수백만 명이 하나인 듯 움직인다. 일의 시작과 끝이 동일하고 생활은 철저히 질서 속에 짜여 있다. 모든 사람은 가슴에 황금색 번호가 적힌 푸른 제복을 입으며, 스스로를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른다.

 

개개인은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전체를 이루는 벽돌 한 조각'으로 인식한다. 건물의 벽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사생활이란 개념이 사라졌다. 모두가 똑같은데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생활이란 과거, 머리털이 길었던 원시 시대에나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 새로운 사회는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깨끗하게 돌아간다. 사람들의 씹는 횟수조차 손가락당 50번으로 정해져 있다. 도덕과 윤리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으로 정의되고, 옳고 그름을 고민할 필요 없이 계산으로 해결된다. 인간을 괴롭히던 문제였던 생계와 사랑 역시 해결되었다.

 

생계 문제는 25세기에 '벽에서 식량을 만들어 내는 기술'로 해결되었고, 사랑 문제는 '성의 율법'으로 해소되었다. 모든 번호는 누구든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평소 마음에 드는 번호를 선택하고, '자유 시간'에 욕구를 해소한다. 이 시스템 덕분에 고민할 필요 없이 삶은 편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완벽한 이 세상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자유를 갈망하며 제멋대로 살려는 이들은 은혜로운 분과 보안 요원들에 의해 제거된다. 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상을 지배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는 사라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세상은 장밋빛이다.

 

주인공 D-503은 자신의 세상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유란 범죄를 낳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자유를 비행기의 속도에 비유하며, 속도가 0이면 비행기가 날 수 없듯, 자유가 0이 되면 범죄도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수학적 공식처럼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미래 세계는 러시아 작가 에브게니 자먀틴이 쓴 소설 우리들의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이 정말 이상적일까? 많은 독자들은 오히려 답답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유를 그리워하지만, 주어진 자유를 버거워한다. 은퇴 후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조차 삶의 방향성을 잃고, 일자리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 등장하는 '세 명의 해방된 노예'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한 달간의 자유를 얻었지만 행복하지 못했다. 작업장에서 멀어진 그들은 손에 익은 망치를 다시 들며 일상을 되풀이하다, 결국 절망 속에 손을 맞잡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왜 우리는 버거움을 느끼는가?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강한 지도자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잘것없던 자신이 위대한 역사 속 일부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실패의 책임도 독재자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안식이 독재에 대한 저항 대신 순응을 만들어낸다. 자유는 독재만큼이나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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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03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스로를 '영혼이 생긴 병'에 걸렸다며 병원을 찾는다. 감정은 모두가 하나로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질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병에서 낫기를 원치 않는다. 감정과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 깃들어 있다. 결국, 그는 '두뇌 소독'을 받고 사라진 감정과 자유에 해방감을 느낀다. 감정이 제거된 삶에 적응하며 다시 완벽한 질서 속으로 돌아간다.

 

 카메라와 통합 전산망이 설치되어 있다. 누군가 작정하고 기록을 살펴본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독재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요청하고 동의한 결과다. CCTV 설치와 전산망 통합은 개인의 편리함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금융 거래와 개인정보 처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효율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현실에서 29세기의 디스토피아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편리하고 쾌적한 감옥으로 변해가는 세상을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자유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누릴 능력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학교와 사회는 노동에 필요한 도덕과 기술을 가르치지만, 진정한 자유에 필요한 능력을 배운 적은 없다.

 

우리들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더욱 자유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D-503의 세계가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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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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