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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무너뜨린 예수... 기독교와 유럽 문명의 대전환

십계명에서 시작된 이야기: 모세가 닦은 고행의 길이 예수를 어떻게 예고했는가

로마의 유연한 다신교 vs. 기독교의 배타적 유일신: 충돌의 끝은?

중세 유럽으로 이어진 로마의 유산: 문명의 퇴보인가, 새로운 탄생인가?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4/11/26 [15:23]

로마를 무너뜨린 예수... 기독교와 유럽 문명의 대전환

십계명에서 시작된 이야기: 모세가 닦은 고행의 길이 예수를 어떻게 예고했는가

로마의 유연한 다신교 vs. 기독교의 배타적 유일신: 충돌의 끝은?

중세 유럽으로 이어진 로마의 유산: 문명의 퇴보인가, 새로운 탄생인가?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4/11/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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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 유대교와 갈라서게 된 근본적 이유는 보편성을 강조한 사상적 변화였다. 유대교는 유대인만을 신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여겼고, 이를 기반으로 폐쇄적인 신앙 체계를 구축했다    

 

기독교가 로마를 무너뜨리고 유럽 문명을 뒤바꾼 이야기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종교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문명과 세계관 전반을 재편했다.

 

유대교의 일신교적 전통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유대교의 배타성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구원 사상을 확립하며 다신교적 로마 세계에 침투했다. 하지만 로마의 신념 체계와 기독교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상충했다. 로마는 다원주의와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포용했지만, 기독교는 창조주를 유일신으로 강력히 주장하며 기존의 다신교적 전통을 부정했다.

 

기독교의 성립 시기는 로마 제정의 성립과 맞물려 있다. 예수가 태어난 시점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확립하던 때였다. 로마는 제국의 광대한 영토와 복잡한 인구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켰다.

 

이런 정치적 변혁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는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적 사고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출현은 이러한 균형에 도전했다. 기독교는 야훼를 유일신으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임으로써 민족과 신분을 초월한 보편적 구원을 주장했다. 이는 유대교의 선민사상과 로마적 다원주의를 모두 초월하는 사상이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갈라서게 된 근본적 이유는 보편성을 강조한 사상적 변화였다. 유대교는 유대인만을 신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여겼고, 이를 기반으로 폐쇄적인 신앙 체계를 구축했다. 반면 기독교는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구원론을 제시하며 야훼를 전 세계의 신으로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율법에 얽매였던 유대교의 엄격한 신앙 체계는 예수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관용적 교리로 대체됐다. 이는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와 주변 세계에 덜 위협적으로 다가가게 했지만, 동시에 로마의 전통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독교의 성장은 로마 사회의 변화를 가속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며 박해를 끝낸 이후, 기독교는 빠르게 성장해 38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는 로마의 종교적 다원주의 전통을 완전히 끝내는 사건이었다.

 

국교화된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기존 종교를 억압하며 자신들의 신념 체계를 강요했다. 로마의 관용적이고 합리적인 가치관은 기독교의 도그마에 의해 대체됐고, 이는 사회의 폐쇄성과 정체를 초래했다.

 

로마의 멸망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과도한 영토 확장과 내부적인 정치 혼란, 그리고 기독교의 국교화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로마는 기독교를 통해 내부 결속을 꾀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의 로마적 가치와 충돌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 기독교의 일신교적 특성은 로마의 다신교적 세계관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로마의 신들은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존재였지만,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심판하는 절대적 존재였다. 이런 충돌은 로마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다.

 

게르만족의 침입과 함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기독교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는 정신적 위기를 겪던 로마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기존의 로마적 가치를 무너뜨렸다. 게르만족은 로마의 빈자리를 채우며 중세 유럽의 주역으로 부상했지만, 그들이 이룩한 문명은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만적이었다.

 

로마의 멸망 이후 중세 유럽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후퇴했다. 로마 시대에 발전했던 과학과 철학, 예술은 중세의 도그마에 억눌렸고, 사회적 계층은 경직되었다. 로마가 이루었던 도로와 상하수도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은 방치되었고, 유럽은 전염병과 기아로 고통받았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로마의 멸망과 유럽 문명의 후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의 일신교 사상은 로마의 다원주의를 무너뜨렸고, 이는 로마적 가치관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독교는 동시에 새로운 유럽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다. 보편적 구원을 강조한 기독교는 유럽의 정신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와 근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유럽과 세계 역사를 재구성한 강력한 철학적, 정치적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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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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