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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국가 경영.... 시대에 맞춘 혁신과 책임

태종과의 차별화로 시대의 길을 열다
인재 양성과 민생 개선에 주력한 군왕의 철학
운명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리더십의 표상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4/11/03 [09:51]

세종대왕의 국가 경영.... 시대에 맞춘 혁신과 책임

태종과의 차별화로 시대의 길을 열다
인재 양성과 민생 개선에 주력한 군왕의 철학
운명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리더십의 표상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4/11/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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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킹 촬영 김학영 감독     김학영기자

조선의 세종대왕은 위대한 지도자의 자질을 구비하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왕으로서 조선의 황금기를 연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깊이 고찰하여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맞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닌, 진정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국가의 번영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세종의 정치적 철학은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리더십의 세 가지 요소와 맥을 같이 한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역량, 행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능력을 꼽았는데, 세종 역시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실히 실천해 나갔다. 첫째, 그는 리더로서의 역량과 재능을 바탕으로 자주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권위를 확립했다. 둘째, 행운과 더불어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으로 국정에 임했으며, 셋째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변화를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세종은 국가와 백성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고 이를 이끌었다.

 

세종은 즉위 초기에 시대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면밀하게 탐색했다. 이는 아버지인 태종의 정책과 차별화를 꾀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태종이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권력 집단 간의 갈등을 종식시키고자 했던 것과 달리, 세종은 상생과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인치보다는 법치를 확립하여 국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자 했으며,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여 국가의 틀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세종은 특히 조선 초기, 고려의 멸망과 함께 은둔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재등용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고려 말기 왕조의 몰락과 새로운 왕조의 성립은 많은 인재들이 산으로 은둔하게 만들었고, 새 왕조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태종은 특히 고려 조정에 몸담았던 인재들을 대거 배제했는데, 이는 인재 부족과 국정 공백으로 이어졌다. 세종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분야에 새로운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혈하는 데에 매진했다.

 

농업 생산력의 향상 역시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조선 초기, 왕조의 교체로 백성들이 새 왕조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있던 만큼, 만약 백성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혁명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세종은 농업 생산력 향상을 위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농업 연구와 개발을 국가 우선순위로 두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정치적 권위를 추구하는 지도자가 아닌, 진정한 민생을 돌보는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보였다.

 

세종의 리더십은 시대적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에서도 빛났다. 그는 자신의 시대적 위치와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이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세종은 한 집단의 지도자로서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며 국민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이해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적절한 결정을 내리며, 조선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세종에게 있어서 시간의 중요성 또한 각별했다. 세종은 태종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생명과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절망감에 빠졌지만, 동시에 시간이 생명의 재료임을 자각하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결심을 다졌다. 시간은 멈추지 않으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자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기 전 세종에게 남긴 말은 세종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태종은 권력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살아왔으나, 결국 죽음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세종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 속에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며,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열어나가야 할지를 다시금 고민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세종의 왕도로서의 자세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태종의 죽음 후 세종은 국상을 치르며 그 책임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는 태종이 조선 팔도에 남긴 유산을 기리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예법을 준수했다. 복례 등의 의식을 통해 조선은 죽음을 초혼하는 예식을 거행했고, 태종의 일생을 기리는 시호와 묘호를 정하여 그를 기렸다. 세종은 태종의 시호로 공정대왕을 선택했고, 묘호는 태종으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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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 초상화(사진=나무위키 캡쳐)    

 

세종의 리더십은 태종과의 차별화 전략에서도 드러났다. 태종의 사후, 세종은 아버지의 정책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열어가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그는 아버지가 조성한 기틀을 바탕으로 농업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더욱 힘을 쏟았다. 당시 조선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감지하고, 필요한 개혁과 정책을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세종의 리더십은 또한 그의 내면적 신뢰와 결단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은 하늘을 두려워하며, 하늘의 뜻을 살피고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가 자신임을 확신했고, 이는 그가 단순히 권력을 탐하기보다 책임감과 소명을 가진 군왕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겸손과 자애로운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끌어갔다.

 

결국, 세종은 뛰어난 학문적 지식과 식견,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조선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실현해 나갔다. 세종의 리더십은 그의 지식과 식견을 통해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실행하는 데 있었다. 그의 리더십은 단순히 조선을 다스리는 왕으로서가 아닌, 백성과 함께 호흡하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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