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이 죽을밖에 없었던 이유..권문세족과의 충돌, 이상을 향한 굳은 신념 정도전은 공민왕의 개혁 정책을 지지하며 권문세족과 끊임없이 대립했다. 권력 다툼 속에서도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그의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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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도전과 온건파의 갈등은 그가 정치적 위기를 겪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이성계와 수도 이전 문제로 의견 충돌을 겪으며 그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이 아닌 한양으로 이전하고자 했고, 정도전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으나 끝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치적 비전은 동료이자 신뢰했던 정몽주와의 갈등에서도 드러났다.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점진적인 개혁을 원했으나,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정도전과 정몽주의 갈등은 결국 서로의 정치적 노선을 넘어 숙명적인 대립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조선 건국을 둘러싼 갈등의 상징이 되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반대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조선을 건국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방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의 삶은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이성계와 손을 잡았으나,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과 갈등이 점차 깊어졌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급진적 개혁과 그의 권력을 두려워했고, 정도전의 개혁이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위협할 것을 우려하였다. 결국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정도전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개혁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이방원의 군사적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선 건국의 설계자로서 후대에 기억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은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이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