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리나강의 쓰레기 대란따스한 지중해성 기후에 따른 겨울 폭우에 겨울 홍수 발생해 쓰레기 대란
|
따스한 지중해의 습기가 높은 산맥에 부딪혀 한겨울인데도 낮은 지대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높은 산에서는 폭설이 내리기 일쑤이다. 그러면 눈 녹은 물에다가 빗물이 보태져 산맥 저지대 일대는 이따금씩 ‘겨울 홍수’가 나곤 한다. 홍수는 당연히 쓰레기를 몰고 다닌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풍부하고도 맑고 푸른 강물로 그림 같은 광경을 연출하던 드리나강은 겨울 한철 어느 때는 볼썽사나운 쓰레기 강으로 그 위상이 추락하게 된다.
겨울 홍수에 휩쓸려 강물 위에 떠다니는 쓰레기들은 나뭇가지에서부터 비닐류, 플라스틱병, 중고 타이어, 폐기된 가전제품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쉽게 말해 가라앉지 않고 떠다닐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뒤섞여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플라스틱 제품 쓰레기가 특히나 많은 까닭은 강 주변국들의 쓰레기 분리수거 및 재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에 버려진 플라스틱류가 비교적 규모가 적은 빗물에도 쉽게 휩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결국은 강 주변국들의 쓰레기 환경 정책과 행정이 미흡하여 드리나강의 쓰레기 대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로이터와 AP 통신 지난 21일 보도한 항공사진을 보면 보스니아 비셰그라드 인근 드리나강에 쓰레기 부유물이 거대한 규모로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스니아 당국은 해마다 치르는 ‘강물 쓰레기 대란 연례행사’에 대비하느라 적당한 곳의 협곡 몇 곳에 쓰레기 흐름을 차단하는 그물망을 설치해 놓고 있는데, 지난주 폭우에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어김없이 강줄기 한쪽에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들어 놓았다.
드리나강은 보스니아 이웃 국가 몬테네그로에서 발원해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를 거쳐 세르비아의 사바강에 합류할 때까지 346㎞를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드리나강 등 몇 개의 지류들이 합쳐진 사바강은 다시 세르비아를 거쳐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과 국경선을 이루는 도나우강으로 합류해 흑해로 흘러든다.
이처럼 발칸반도 서북쪽 아드리아해에 접한 디나릭알프스산맥에서부터 발칸반도 동남쪽 흑해까지 이어지는 드리나강의 쓰레기는 결국 흑해까지 오염시킬 게 뻔한 일이어서 최근 주변국들에서는 강물 쓰레기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는 실정이다.
발칸반도의 여러 강줄기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꼽히는 드리나강은 해마다 겨울 한때씩 가장 더러운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매우 역설적이기도 하다. 드리나강에 대해 ‘아름답다’라는 수식어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디나릭알프스산맥 일대는 물에 잘 녹는 석회암이 많은 지형이어서 물이 깎아 낸 산 모양이 매우 예쁘다. 또 암석이 물에 쉽게 침식되는 바람에 계곡이 좁고 가파르게 형성되어 깎아지른 절벽과 깊고 푸른 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강물은 석회암 성분이 많이 녹아 있어 밝은 녹색의 에메랄드빛이나 진한 청색의 코발트빛으로 밝게 빛난다. 비가 많이 와서 흙탕물일 때를 제외하면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한마디로 산은 예쁘고 물은 곱다. 지질지리학에서 카르스트(Karst)지형이라고 일컫는 석회암침식지형의 전형이 이곳에 있다. 카르스트지형이라는 말이 보스니아 이웃 나라 크로아티아의 카르스트지방에서 유래한데서도 디나릭알프스산맥 일대의 산수(山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어림잡아 볼 수도 있다.
이 지역에 석회암지대로 이루어진 까닭은 바로 지구의 지각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수억 년 전 아프리카지각판이 유라시아지각판을 밀어 올리면서 바다 밑의 땅이 솟아올라 유럽 중부와 남부의 산맥들을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를 잇는 알프스산맥과 이탈리아북동부의 줄리안알프스산맥 및 발칸반도 서부의 디나릭알프스산맥을 이루었다. 이처럼 수억 년에 걸친 지구의 지각 활동과 침식 현상으로 그지없이 아름답게 빚어진 드리나강이 사람들의 무분별한 쓰레기 방치로 인해 더럽혀지는 현실이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드리나강의 쓰레기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비화 되면서 드리나강 어느 곳에 놓인 작은 다리 하나가 거꾸로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드리나강의 다리’이다. 보스니아 비셰그라드 지방에 있는 ‘메메드-파샤 소콜로비치 다리’가 그것이다. 강폭이 좁아지는 곳 코발트빛 강물 위에 11개의 아치형 교각으로 세워진 이 자그마한 돌다리는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로 유명하다.
1516년 오스만투르크제국 때 세워진 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발발 시점까지 4백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이 다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비극적 역사가 마치 연대기(年代記)처럼 서술된 이 소설은 발칸반도 여러 나라가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로 통합되어 있던 1945년에 발표되어 1961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가톨릭, 이슬람교, 개신교의 종교적 갈등과 민족 갈등, 정치 갈등 등이 점철되어 전쟁으로 얼룩진 4백 년의 역사를 유장(悠長)한 필치로 그려낸 이 소설은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코발트빛 드리나강물에 세워진 ‘드리나강의 다리’ 아래로 겨울 홍수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둥둥 떠내려가는 광경을 어림잡아 본다.